이라크전쟁1년]여성 인권신장 ‘머나먼 길’
이라크전쟁1년]여성 인권신장 ‘머나먼 길’
종전 이후 각국에서 흘러들어온 중고차가 넘쳐나는 바그다드 번화가인 카루다 거리. 18일 기자가 들른 이곳에서는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혼자 돌아다니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장을 보러가는 부녀자와 등·하교하는 여학생들 옆에는 항상 남자친척들이 붙어다녔다.기자는 이날 바그다드의 한 여자중학교 입구에서 소총으로 무장한 2~3명의 건장한 남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경찰도 방위군도 아닌 사설경호원이거나 학부모였다. 10대 딸을 이 학교에 데리고 온 카심(42)은 “여학생들을 노린 납치가 빈번히 일어나지만 경찰도 미군도 신경쓰지 않으니 우리 스스로 보호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그다드 파도스 광장 근처에 있는 이라크 자유여성기구(OWFI)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8월 바그다드에서만 적어도 400건의 강간사건이 발생했다. 대부분 이슬람을 믿는 이라크인들은 여성이 강간당할 경우 집안의 수치로 여겨 피해여성에게 자살을 강요하거나 가족들이 직접 살해하는 이른바 ‘명예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전쟁 이후 생활고가 가중되면서 여성 인신매매도 고개를 들고 있다. OWFI의 관계자는 “납치범 또는 부모의 손에 의해 100~200달러의 헐값에 팔려나가는 이라크 여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살인적인 이라크의 실업률로 볼 때 여성들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만큼 어렵다. 전란(戰亂)으로 남편을 잃거나 경제력을 상실한 여성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구걸하는 수밖에 없다. 기자가 탄 자동차가 바그다드의 한 거리에 잠시 멈추자 머리에 검은 두건을 두른 여아 몇명이 운전석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이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짓밟히는 여성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바그다드의 자주적 여권단체인 ‘이라크 여성동맹’의 사무총장 사미라 후세인(40)은 “이라크 여성의 인권회복은 이라크 스스로의 힘으로 주권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미라는 여성 의원을 총 의원의 25%까지 늘린다는 내용을 담은 임시헌법과 같은 제도적 변화만으로는 여성 인권을 개선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런 여권운동이 오히려 미국의 선전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여성에 있어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은 매우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날 바그다드 중심가에는 이라크 사상 최초로 여성들의 행진과 시위가 벌어졌고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남녀평등과 여권신장을 외쳤다.
이날은 중동에서 가장 진보적인 임시헌법에 서명한 날이었고 연합군 임시행정처(CPA)와 미국 국제개발처(AID)로부터 1백40만달러를 지원받는 여성센터가 만수르 지역에 개원한 날이기도 하다.
〈유신모기자 simon@kyunghyang.com〉
경향신문 2004-03-19 18: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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